무기력이 취향

무기력이 취향
Photo by Joshua Hoehne / Unsplash

요즘은 사람들이 피곤하다는 말을 할 때, 그 이유를 길게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단순히 일이 많아서, 잠을 못 자서, 관계에 지쳐서라고 해버리기엔 이 피로가 조금 더 복잡하다는 걸 모두가 어렴풋이 안다. 정확히 어디서 시작됐는지도 모를 무거움이, 하루를 여는 순간부터 이미 몸 안에 들어와 있다.

아마도 이 무기력은 현대인의 일종의 공통 감각 같은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본 적 있는, 그런데 막상 입 밖에 꺼내기 어려운 종류의 권태. SNS에서는 이를 애써 유머로 소비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를 인증하는 사진들, 게으름을 예술처럼 포장한 문구들. 그런 걸 보며 위로를 받으면서도, 한켠에서는 조금 더 쓸쓸해진다. 이렇게까지 힘이 빠져 있는 게 정상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무기력이 취향이 되어버린 시대다. 예전에는 부끄럽게 숨겨야 했던 나약함이, 이제는 대놓고 드러낼 수 있는 일종의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요즘은 아무것도 하기 싫어.” 이 말은 이제 변명도, 패배도 아니다. 그냥, 서로의 피로를 확인하는 인사가 되었다.

그럼에도 이 느슨함이 온전히 편안한 것만은 아니다.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시간을 허비하고 나면, 몸은 쉬었는데 마음은 더 무겁다. 해야 할 일들은 그대로 쌓여 있고, 잠깐의 해방감은 다시 죄책감으로 바뀐다. 게으름과 회복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얇은지, 그 모호함이 오히려 사람을 더 지치게 한다.

어쩌면 이 시대의 무기력은, 너무 많은 선택지와 너무 많은 기준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정보와 비교의 프레임들, 끝도 없는 자기계발의 압박. 사람들은 더 나은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 ‘나음’이 정확히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묻기 시작하면, 대답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더 피곤해지고, 더 쉽게 꺼져버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무기력해진 자신을 바라보며 자꾸만 ‘이러면 안 된다’고 다그친다. 그래도 결국 달라지는 건 없다. 이 시대의 무기력은 개인의 나태함이 아니라, 너무 과밀해진 세계가 만들어낸 피로의 부산물에 가깝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 부산물을 한 손에 쥔 채, 어떻게든 균형을 잡아보려 애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무력감을 무조건 미화할 필요도 없다. 분명히 어떤 나태함은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힐링’이라고 부르면서, 사실은 모든 책임을 미뤄두고 있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건 누구도 완벽하게 구분해낼 수 없는 감정이다. 무기력이 회복인지 방치인지 구별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어렵다.

그저 이 시간을 조금 더 솔직하게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대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도, 오늘 하루가 쓸모없어도, 그렇게 하루를 버티고 있는 자신을 과하게 비난하지 않는 태도. 가끔은 그게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성숙한 자세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다시 움직일 힘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게 오늘이 아니어도 괜찮다. 매일을 부지런히 살아내는 사람도, 잠시 멈춰 선 사람도, 결국은 같은 질문을 품고 산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이렇게 멈춰 있어도 괜찮은 걸까?

아마 누구도 확실한 대답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피로를 눈치만 본다. 혹은, 같은 무기력의 결을 느끼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다.

큰 해답이나 거창한 다짐 없이도 좋다. 오늘 하루를 겨우 견뎠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오래 남는 위로는, 언제나 그렇게 단순하고 담백한 말이다.